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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국제영화제 - 키스 더 퓨처
    생활 2023. 10. 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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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말의 정세를 보여주는 브라운관 TV들의 몽타주

    유고슬라비아 전쟁 - 보스니아 전쟁 - 사라예보 포위전

    4년간의 사라예보 포위전 기간(1992.4.6~1996.2.29 / 1425)

    예술에 의지해 지옥을 버틴 사라예보 사람들 이야기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고 정치인들의 선동에 우리가 휘둘릴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가? 

    다양성을 대표하던 도시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비극을 통해 세계인들은 그 불신과 증오의 결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20세기 마지막 기간의 가장 끔찍하고 부끄러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예술에 의지해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기약이 없는 포위 속, 무자비한 포격과 저격이 쏟아지는 일상에도 사람들은 지하대피소와 발전기를 이용해 예술활동과 유희를 즐긴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펑크 락을 즐기며 저항 정신과 열정을 분출한다. 한 드러머는 한쪽 팔을 잃는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붕대를 이용해 드럼 스틱을 감은 채로 연주를 한다.

    저항, 인권, 반전, 환경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세계적인 락 밴드 U2의 음악 역시 사라예보의 젊은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비극적인 사라예보의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세계는 이 전쟁에 무관심하다. 그런 무관심 속에도 조금씩 전 세계 각지에서 개별적인 도움과 함께 온갖 별종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전쟁과 폭력이 일상이 된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차원적 도움과 별종들은 단순한 전쟁 관람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사라예보 사람들과 함께 저항하고 고통을 나누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별종들도 존재한다.

    그 별종들 가운데에는 나중에 이 죽음의 도시 사라예보에 희망과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 빌 카터라는 미국인도 있었다.

    처음에 빌 카터 또한 젊은 혈기와 개인적인 동기로 이 전쟁터에 기어들어 온 별종 중 하나였다.

    그는 시리어스 로드 클럽이라는 작은 모임을 꾸려 식량과 함께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처음 사라예보에 들어왔다.

    사라예보 사람들과 교류하며 빌 카터는 차츰 이곳에 온 이유’,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라예보의 문화예술인들이 주도하여 창설한 지하 예술 방송 ‘랫 아트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게 된다.

    ‘랫 아트에서 진지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빌 카터는 세계적인 락 그룹인 U2를 여기 사라예보에 오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얼마 전 U2의 리드보컬 보노가 짧은 영상을 통해 사라예보의 상황을 알고 있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위 ‘랫 아트의 일원들은 그의 계획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한다.

    때마침 정말 운이 좋게도 ‘ZOO TV’라는 제목으로 1년간 전 세계 투어 콘서트를 하고 있던 U2가 가까운 유럽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 중이었다. 빌 카터는 U2의 매니지먼트 회사에 무작정 팩스 한 장으로 사전 인터뷰 요청을 보내고 바로 U2의 공연이 열리는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빌 카터는 U2의 리드보컬 보노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 인터뷰에서 빌 카터와 보노는 사라예보의 상황과 인간의 존엄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공감을 나누었고 훗날 사라예보에서의 공연을 기약했다.

    이 인터뷰는 이후 사라예보 지하방송 ‘랫 아트를 통해 계속해서 방송되며 많은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세상과 단절되지 않았다는 희망을 주었다.

     

    인터뷰 내용 - “용기는 압박 속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품위”, “종교와 피부색은 정치적 핑곗거리”,정치인들의 선동에 대항해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술을 통해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U2의 리드보컬 보노역시 이 인터뷰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사라예보에 가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이렇게 보노와 빌 카터의 첫 인터뷰에서부터 천천히 사라예보의 희망을 위한 무엇인가가 조율되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U2의 사라예보 공연이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의견에 모든 관계자들이 동의했다. 대신 위성통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U2의 공연과 사라예보의 상황을 연결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다. 유럽방송연합을 비롯한 기관들까지 협조하며 마침내 그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때마침 이 당시의 U2 순회공연의 주제는 “ZOO TV”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미디어 매체 풍자와 관련되어 있어서 대형 스크린을 비롯한 멀티미디어 장비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이전까지의 U2 공연은 실험적이지 않고 소박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이 의도치 않게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효과를 낳게 한 것 같다.)

    양측이 위성 통신으로 연결되어 U2는 공연마다 사라예보를 위한 노래와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라예보는 현재의 비참한 상황과 사람들을 보여주며 서로 공감을 나누었다. 간혹 사라예보와 공연 현지 간에 이별해 있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음성으로라도 만날 수도 있었다. 또한 이 공연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사라예보를 비롯한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전쟁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보노는 이에 대해 우리(공연장, 세계)의 환상과 그곳(사라예보)의 현실이 나란히 있다는 말을 남긴다.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U2는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창문이었을 것이다.

    초기에 이런 공연 방식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라예보의 참상을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환상과 현실의 격차가 커져서 사람들에게 마치 리얼리티 쇼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쟁의 참상이 처럼 보이는 것에 관계자들은 점점 회의감을 느끼고 결국에는 U2 공연에서의 위성 중계방송이 중단되었다. 이렇게 U2와 사라예보 사이의 공감 형성은 일단락되었다.

    사라예보에서 포위는 4년간 계속되었지만 사람들은 전쟁도 일상으로 받아들인 채 버텨내고 있었다. 당시 지하방송 ‘랫 아트를 이끌었던 언론인 부부는 그런 암담한 현실에서도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회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전쟁에 행복을 내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정치인들에게 예술인들은 적이다. 민중들에게 저항할 힘을 만든다.)

    사라예보가 포위되고 3년쯤이 지나서야 드디어 세계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 20세기 최악의 전쟁범죄로 여겨지는 스레브레니차 대학살과 2차 사라예보 마르칼레 시장 포격 같은 더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 후에야 마침내 서방 국가들이 무력을 행사했다.

    평화는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서방국가들은 2차 대전의 기억 때문에 마지못해 무력을 행사했고 세르비아계 지도자들 역시 서방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미국의 주도로 데이턴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불완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서방, 특히 유럽 주요 국가들이 뒷짐 지고 있는 사이 이미 보스니아 전쟁에서만 3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사라예보 포위전에서는 13,000여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어린이의 숫자는 1,6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대부분은 무자비한 포격과 저격수들로 인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의 분쟁은 2001년에 이르러서야 멈춘다.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로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이미 사라예보의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사회 기반 시설 등 유형의 것들은 물론이고 사람들 간의 믿음이나 희망과 같은 무형의 것들까지도.

    남아있는 이들의 미래와 사라예보의 재건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믿음과 희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U2는 사라예보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사라예보의 포위가 완전히 해제되고 1997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U2가 사라예보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많은 공연 관계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라예보까지 기꺼이 따라왔고 수년동안 공동묘지로 쓰이던 경기장에 모두를 위한 무대가 세워졌다.

    U2의 사라예보 공연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U2뿐만 아니라 이슬람계 전통 음악단과 전쟁 기간 동안 사라예보 지하에서 활약하던 시민 밴드도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했다.

    전쟁 후 처음으로 수많은 보스니아 인들이 모여서 유희를 즐기는 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공연 도중에 보노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 이상은 정상적으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관중들은 개의치 않았다. 보노를 대신해 모든 관중들이 U2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보노가 말한다. “과거를 잊고 미래에 입을 맞춰라.”

    후에 그 모두를 위한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말한다.

    “U2의 음악, 보노의 목소리가 우리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했다.”

    “이제야 정말로 전쟁이 끝났다.”

    아무리 달라도 우리는 평화롭게 공존이 가능하다.”

     

    마지막 출연자의 말 – “생각해보니 1997년보다 21세기 현재의 인류에게 그런 무대가 필요할 것 같다.”

     

    21세기 2020년대의 정세를 보여주는 최신형 평면 TV들의 몽타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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